세상교회
worldly church

[주석읽기의 즐거움] 누가 진짜 예언자인가

by Hyun Kim, on September 26, 2026

아시리아 치하에서 이사야는 아시리아는 망하고 이스라엘은 독립할 거라고 했다. 시간이 흘러 이집트 치하에서 하나냐는 이스라엘은 독립할 거라 했고, 예레미야는 망할거라고, 그러니 항복하라고 했다. 누가 맞을까? 하나님은, 복붙하지 마!

여호와의 말씀이라 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도둑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그들이 혀를 놀려 여호와가 말씀하셨다 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거짓 꿈을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령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들은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23:30–32)

그렇지만, 예레미야와 하나냐 가운데 누가 바른 예언을 하는지 고르라면? 선택하는 올바른 기준을 성경은 제시하는가? 비슷한 문제로 두 목사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할 때, 누가 바른 설교를 하는 것인가? 절실한 질문이다. 성경에 기준이 있는가? 신학에서는 “거짓선지자 문제”라 한다. 답은, 음, 글쎄, 없다. 성경 자체에는.

1. 제임스 크렌쇼 James L. Crenshaw: Prophetic Conflict (1971)

객관적 기준은 없다는 입장이다.

기준 1: 예언의 성취: (신18:21–22) 결과론적으로야 예레미야가 맞았다고 하겠지만, 당시 청중 가운데 서 있다고 해 보자. 이 기준이 무슨 도움이 되는가?

기준 2: 기적과 이적: (신13:1–3): 거짓 선지자도 그런 거 한다고 성경에 나옴. 게다가, 요즘은 교회와 신학도 그런 시대는 지났다고…

기준 3: 예언자의 개인적 도덕성: (렘23:14) 도덕적으로 문란하면 문제지만, 도덕적으로 흠이 없다고 해서 바른 선지자는 아니다. 하나냐는 도덕성, 뇌물, 우상숭배로 비난받은 적 없고, 바르고 애국심 높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었다.

2. 폰라트 Gerhard von Rad: 여호와의 회의 (סוֹד 소드, 렘23:18)

누가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여 그 말을 알아들었으며 누가 귀를 기울여 그 말을 들었느냐 (렘23:18)

그걸 어찌 아나이까. 내가 거기 있었던 것도 아니고… 둘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한다고 하는데, 개인의 영적 체험을 제가 어찌 감히…

3. 셸던 블랭크 Sheldon H. Blank: 거짓말하는 영의 역설

크레타의 에피메니데스왈, “모든 크레타인들은 거짓말장이다.” 에피메니데스는 진실을 말하는 것일까 거짓을 말하는 것일까? 이스라엘 왕 아합이 전쟁을 할지말지 400명의 선지자에게 물었더니 다 전쟁을 하라, 반드시 이길 것이라 대답하였다. 그에게 나쁜 말만 하는 선지자 미가야에게 물어 보려고 그를 불렀더니,

미가야를 부르러 간 사신이 일러 이르되 선지자들의 말이 하나 같이 왕에게 길하게 하니 청하건대 당신의 말도 그들 중 한 사람의 말처럼 길하게 하소서 미가야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 하고 이에 왕에게 이르니 왕이 그에게 이르되 미가야야 우리가 길르앗 라못으로 싸우러 가랴 또는 말랴 그가 왕께 이르되 올라가서 승리를 얻으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 왕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몇 번이나 네게 맹세하게 하여야 네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진실한 것으로만 내게 말하겠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보니 온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 같이 산에 흩어졌는데 여호와의 말씀이 이 무리에게 주인이 없으니 각각 평안히 자기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이스라엘의 왕이 여호사밧 왕에게 이르되 저 사람이 내게 대하여 길한 것을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것을 예언하겠다고 당신에게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미가야가 이르되 그런즉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의 좌우편에 모시고 서 있는데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아합을 꾀어 그를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또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그를 꾀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이르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의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있겠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꾀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이제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 대하여 화를 말씀하셨나이다 (열왕기상 22:13–23)

자, 왕은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까? 미가야의 역설? 미가야 천재다. 미가야의 저주? 이스라엘 왕은 예언자들 믿지 말라는 예언? 결국 미가야를 가두고 전쟁에 참전하여, 에헴, 죽는다. 거짓말하는 영. 심지어는 여호와의 회의에서도 왕을 죽이려고 거짓말하는 영을 보낸다는 말씀이신데, 그러니까, 그렇다면, 에, 누구 말이 맞는지 판단할 기준은 없다는 말씀.

4. 브루그만 Walter Brueggemann: 이데올로기, 고통

예언자적 상상력에서는 사회학적 기준과 몸의 기준을 제시한다.

거짓선지자는 왕의 편에서, 현상유지, 부자와 엘리트 중심으로 예언하고, 진짜 선지자는 반대이다. 또 몸의 기준이란, 참 선지자는 자기 메시지 때문에 맛이 간다 망가진다. 예레미야는 자기가 태어난 날을 저주할 지경에 이르고, 그가 사랑하는 백성들은 그를 미워하고, 고문과 격리로 고통을 받는다.

제미나이는 결국 이것은 실존주의적 도박이고, 하나냐의 창조와 연속성의 신학과 예레미야의 십자가와 불연속성의 신학 사이에서 선택하는 문제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