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교회
worldly church

[주석읽기의 즐거움]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by Hyun Kim, on September 22, 2026

“저렇게 순해 빠져서야, … 이 험한 세상 어찌 살려고, 쯧쯧…”

어릴 때 종종 듣던 동네 할머니 말씀이다. 요즘은 별로 이런 말이 잘 들리지 않지만, 안타깝게도…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시1:4)

성경은 정반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이 험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바람에 휩쓸려 다니는 사람들은 악인들이다! 시편, 특히 시편 1편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보고, 느끼고,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세계.

애초에 시편 1편은 아주 이상하다. 악인의 반대는 의인이 아니라 “복있는 사람 (시1:1)” 그러니까 “운좋은 사람” 이다. 급하게 호기심이 동하여 굳이 읽고 싶게 되었던 이유가 바로 악인의 반대는 복/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말이었다. 음, … 솔직히 제미나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렇게 복/운을 읽어 내는 것은 아주 자본주의적, 현대적인 읽기이고, 본문은 좀 더 존재론적인 진술이라 한다. 시편 1편은 아슈레 אַשְׁרֵי (‘ashrê)로 시작하는데,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할 때 흔히 사용하는 바뤀 בָּרוּךְ (bārûk)과는 다른 말이다. 복을 (누군가로부터) 받거나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자족, 자기 바깥의 세상 걱정에서 자유로운 상태,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음에서 오는 신의 만족, 불교의 자족(知足, Santutthi)–외부의 조건에 흔들리지 않는 스스로 온전한 행복(Blissful)과 같은 것이라 한다. 흥미롭게도 70인역은 그리스어 μακάριος (makarios)로 번역하는데, 이것은 신약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5:3)”의 상태이다.

운으로 읽는 것은 아주 자본주의적이라는 제미나이의 비판에 뜨끔하면서도 인정. 오래된 번역에서는 복이라 하지만, 최근 번역에서는 운이라 번역하기도 하는 이유는 어원이 같기 때문이고 (happy, mishap, haphazard 모두 같은 어원이라고 제미나이왈), 또 복이라고 하면 도덕적 기반과 동떨어진 감정적 상태, 사소한 즐거움으로 읽힐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편의 אַשְׁרֵי (‘ashrê)는 운, 우연, 확률같은 것보다는 아슈레도덕적/존재론적 상태라는 것이다.

어찌됐건, 시편 1편의 세계관은 우리와는 진정으로 다른, 이질적인 세계관이다. 얼마나 이질적인고 하면, 조금만 페이지를 넘겨 보면,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그러므로 그의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존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는도다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고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 (시73:2-12)

같은 성경에서도, 같은 시편에서도 완전히 다른 세계를 그리고 있다.


어떤 사람은 태생적으로 음악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음악을 좋아하기를 배운다. 주석 일기, 아주 도전적이지만, 태생적으로 좋아할 리는 없겠지만, 이왕 할거라면, 이왕 평생 안고 갈 일이라면 좋아하기를 배우는 것도 좋겠다. 음악도 배워서 좋아하는데 뭐 그까짓 주석 읽기야… 그래서 [주석 읽기의 즐거움]이다. 집어든 책은 ‘Goldingay, Psalms: Volume 1 Psalms 1–41 (Goldingay 2006)’ 이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문득 주석서가 읽고 싶을 때에는 https://bestcommentaries.com에 가서 보통 top 3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데, 대체로 이 가운데 한두 권은 킨들판이 나와 있다. 그러니까 특별한 기준은 없고, 언제라도 읽을 수 있는 파일로 다운로드할 수 있는 것인데, 대체로 https://bestcommentaries.com에서 순위가 높은 것을 고르는 것이다. 단점은 비싸다는… 그렇지만 모든 주석서는 원래 비싼… 주석을 읽는 것이 즐거운 진짜 이유는 남의 눈을 빌어서, 오래된 텍스트의 새로운 의미를 알고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익숙한 문장이 전혀 새로운 뜻을 품고 낳을 때의 즐거움이란… 성경 읽기, 아니 모든 텍스트 읽기의 진짜 묘미이다.


좌절할 때, 괴로울 때, 마음이 상했을 때, 갈 바를 모를 때, … 몇 년째 그런 상태에 빠져 있을 때… 한 마디로 성경이 절실할 때.

시편이 특별한 것은 하나님이 내게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내가 하나님께 하는 말이다. 내가 하나님께 할 수 있는 말, 내가 하나님께 하도록 허락된 말들 150편. 시편은 좌절할 때, 마음이 상할 때 할 수 있는 감정표현, 감정을 훈련하고, 하나님 앞에서 허락된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150편이나 되니 하루 한 편씩 읽어도 6개월은 간다. 하나님 앞에서 감정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고 맞장뜰 기회이다.

그렇다면, 시편 1편은 아주 특별하다. 다른 시편은 다른 사람을 욕하고 저주하고 날것의 감정을 드러내고 이를 갈고 이빨을 드러내고 적으로 인하여 상한 마음을 내어놓는데, 여기서는 지복의 상태에 대하여 말한다. 현실과는 아주 동떨어진 것 같은 세상을 말한다. 이 이질감을 어찌할 것인가!

(Goldingay 2006)는 예레미야 12장을 읽어 보라 한다.

여호와여 내가 주와 변론할 때에는 주께서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 주께서 그들을 심으시므로 그들이 뿌리가 박하고 장성하여 열매를 맺었거늘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들의 마음은 머니이다 (렘12:1–2)

하나님의 대답은? 뜬금없다. 욥기에서처럼.

만일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강 물이 넘칠 때에는 어찌하겠느냐 (렘12:5)

한 마디로, 엄살 피지 마. 뭘 그 정도로… “그 정도”란 바로 앞장에 보면 무려 예레미야를 암살하려 한 것이었다. 신학/변증론은 “신이 선하다면, 왜 세상은 악한가?”라는 철학적/사변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하나님은 “그래서 너는 뭘 할건데?”라고 되물으신다. 그보다 훨씬 나쁜 일이 생길 거니, 그정도로 어둡고 축축한 골방에서 훌쩍거리지 말고, 쫄지 말고, 더 큰 싸움을 준비하라고 하신다. 그래서, 넌 어쩔건데? 이건 철학교실이 아니라 전쟁터라는 것이다.

읽는 책

주석

  1. Goldingay, John. 2006. Psalms: Volume 1: Psalms 1-41. Baker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Wisdom and Psalms. Baker Academ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