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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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읽기의 즐거움] 예레미야는 어떤 의미에서 옳았는가?

by Hyun Kim, on September 27, 2026

오래전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를 읽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가끔씩 맴돈다. 처음 읽은 대체역사 소설이어서, 아마도,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는데 실패하고, 온건파 이토 히로부미가 권력을 잡아서 한국은 1980년대 여전히 일제치하… 대체역사, 만약 어떤 작은 일이 다르게 일어났더라면 지금은 어떨까? 만약, 만약에 우리가 읽고 있는 것이 예레미야서가 아니라 하나냐서라면?

제미나이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유대교는 586BCE에 죽었을 것이라고 한다. 정말?

하나냐가 살고 예레미야가 죽었더라면, 하나냐서가 살아 남았더라면, 하나냐서는 고대 근동의 모압 메샤 비석(Moabite Mesha Stele)처럼 왕과 국가의 선동처럼 보였을 것이라고 한다. 야웨는 예루살렘의 신, 시온산은 불패의 우주의 축, 다윗왕가는 하나님의 보증으로 불멸을 주장했을 것이고(익숙한 이야기이다. 이사야서의 이야기), 바빌론의 임박한 멸망과 성전의 금은보화는 돌아오고 이집트의 용맹한 군대의 지지를 받는 유대인의 자부심을 한껏 고양했을 것이다. 도덕적 우위를 자랑한 것이고, 타락과 위선, 성전의 훼손, 채무와 노예제도에 대한 고통스러운 비판도 없었을 것이고, 하나님의 은총은 도덕적 언약이 아닌 천부인권으로 선언되었을 것이라 한다. 그리고, 미래는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

과거 근동의 관습상 도시가 점령되고 나면, 성벽을 무너뜨리고, 성전을 불태우고, 눈먼 왕을 사슬에 묶어 끌고 가고, … 섬기는 사람이 없는 신은 폐기된다. 에베소의 아르테미스 신전은 고대세계의 7 불가사의이지만, 356BC 헤로스트라투스는 여기 불을 질렀는데, 완전히 불타버렸다. 플루타르크의 “알렉산더의 생애”를 보면,. 마그네시아의 헤게시아시왈,

아르테미스의 신전히 불타버린 것은 놀랍지도 않다. 여신은 그날밤 다른 곳에 가서 알렉산더 대왕의 산파 노릇을 하느라 바빴다.

자기 신전도 지키지 못하는 신을 누가 섬기겠는가? 신전은 다시 지어졌지만, 267년에 고스족의 침략을 받아 또 불타 버렸고, 사람들은 더 이상 신경도 쓰지 않게 되었다. 신전의 대리석 기둥은 나중에 콘스탄티노플로 가져가서 하야 소피아 짓는데 재활용… 요즘 아무도 아르테미스를 섬기지 않는 이유이다.

그리고 트로이, 오디세이 때문에 요즘 유명해진,

트로이의 불패의 상징이었던 팔라스 아테나(Pallas Athena), 신전의 거룩한 나무상 팔라디움(Palladium), 오디세이와 디오메데스는 먼저 그걸 훔친다. 이후 아테나는 사실상 신전을 포기한다.

2. The Fall of Troy: The Discarded Palladium and Athena’s Useless Altars

유리피데스의 “트로이의 여자들”이라는 비극은 포세이돈과 아테나가 짐을 싸서 불타는 폐허에서 떠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도시가 파괴되고 몰락하면, 신의 숭배도 쇠락하고 더 이상 섬기지 않게 된다… 트로이여 안녕, 한때 자랑스러웠던 성벽이여 안녕. 아테나가 트로이의 몰락을 바라지 않았더라면, 너는 여전히 거기 서 있었으리라.

도시가 파괴된 것은 신이 계약을 어겼거나, 더 강한 신에게 졌거나 아니면 그 나와바리에서 힘을 잃은 것이다. 로마인들은 전쟁에서 이기면 도시를 약탈하기 전에 신을 보내버리는 형식적인 군사적 의식 에보카티오(Evocatio)을 치뤘다고 한다. 고대 근동과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전쟁에서 이기고 나면, 군인들이 신전에 들어가 신상을 길거리로 끌고 나와 수레에 싣고 바빌론 거리로 행진하여 마둑의 신전 에사길리아에서 마둑의 발 믿에 둔다. 이스라엘은 신상이 없었으므로, 그냥 신전의 보물을 약탈했다.

만약 예레미야서가 아니라 하나냐서가 살아 남았고, 유대에서 읽었더라면, 그러니까, 하나냐의 하나님은 아르테미스나 기타 여러 그리스나 로마의 신들처럼 불타 죽었을 것이다. 바빌론으로 유배된 유대인들은 다른 중동 도시의 사람들처럼 쓸모 없는 신을 버리고, 마둑/이시타/네보를 섬기기 시작했을 것이고, 요즘 사람들은 예레미야서 대신 하나냐서를 읽는 것이 아니라, 아예 성경을 읽지 않거나 아니면 고대 그리스 신화나 수메르 신화와 비슷한 부류로 취급했을 것이다. 제2성전도, 시나고그도, 랍비유대교도 기독교도 없었을 것이다.

예레미야서에서 하나님이 복붙하지 말라고, 앞에서도 본 것처럼 친히 적군을 지휘하여 이스라엘군과 싸우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너희가 성 밖에서 바벨론의 왕과 또 너희를 에워싼 갈대아인과 싸우는 데 쓰는 너희 손의 무기를 내가 뒤로 돌릴 것이요 그것들을 이 성 가운데 모아들이리라 내가 든 손과 강한 팔 곧 진노와 분노와 대노로 친히 너희를 칠 것이며 (렘21:4–5)

직접 성전을 불태우고,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고 하셨기 친히 유배가는 사람들을 따라 바벨론으로 걸어가셨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성경을 읽고 교회에 다니고 있는 것이다.

하나냐의 하나님이라면 아르테미스처럼 되었겠지만, 이스라엘은 트로이처럼 되었겠지만, 하나님이 친히 성전을 파괴하고, 친히 적의 손을 들어 이스라엘을 쳤기 때문에 우리가 기독교를 믿고 있다는 사실은 좀… 소화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보라 내가 북쪽 모든 종족과 내 종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다가 이 땅과 그 주민과 사방 모든 나라를 쳐서 진멸하여 그들을 놀램과 비웃음거리가 되게 하며 땅으로 영원한 폐허가 되게 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25:9)

게다가,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 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렘29:4–7)

그리하면, 마음에 기록한 새 언약 ( לֵב 레브)을 줄 것이라 하신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31:31–34)

그리하여, 역사상 전례 없는 하나님, 패배자의 하나님, 상처 입은 하나님, 고통받으시는 하니님, 함께 고통받으시는 하나님이 성경에 기록된 것이다. 그리하여, 성경은–특히 예레미야서는 승전가가 아니라 패자를 위한 생존 매뉴얼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