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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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서스, 무신론자의 신학개론

by Hyun Kim, on June 05, 2025

지난 6개월,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겠습니다. 문득 ‘넥서스’라는 책을 집어 들었죠 (Harari 2024). 음… 요즘 노안 때문에 가능한 읽는 것을 자제하느라 오디오북을 들었죠. 너무 길어서 안들었을 것 같은데, 지난 6개월, 현실과 동떨어져 마치 꿈속을 헤메는 것 같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무신론자의, 무신론자를 위한 신학개론이랄까요. 누군가 말한 것처럼, 유신론이 없으면 무신론도 없다는 가정을 확인시켜주는 책이랄까요. 하라리는 가장 싫어하는 것이 카톨릭 교회(아마도 게이라서), 그리고 공산주의(아마도 조상이 폴란드에서 포그롬의 피해자여서), 이 둘에 대한 적대감이 상당합니다. 그렇지만, 그 적대감을 퍼부어대기 전에, 이들이 존재하였던 이유를 해명할 필요가 있어, 현상학과 특히 해석학의 전통에서 간주관성(intersubjectivity)라는 개념을 크게 확장합니다. 어쩌면, 마르크스의 상부구조 전체 플러스 알파 (+ α), 즉 자연에 있지 않지만 우리가 집단적으로 만들어낸 모든 것들을 뭉뚱그리는 그 무엇으로 규정합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카톨릭 교회와 공산주의 – 범위를 엄청나게 넓혀서 신화와 관료주의를 대표적인 간주관성으로 정의합니다.

도대체 이런 것들이 왜 필요할까요? 그는 이런 것들 때문에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이기고 정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것들이 언어 없이는 불가능한 수준의 막대한 조직과 선동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라는거죠. 협력의 범위를 자연적으로 불가능한 수준까지, 요즘으로 치면 국가 단위로 넓혀 놓았다는거죠.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으니, 그건 그렇다치고… ‘넥서스’에서 주장하는 것은 이제 인터넷과 무엇보다도 인공지능 덕분에 이게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접어들었다는겁니다.

이게 그의 이전의 책을 읽지 않았던 두번째 이유인데 (첫째는 너무 길어서, 둘째는 거대역사 담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흥미에 끌려서 (요즘 인공지능 책 이외에는 보는 것이 없는 수준입니다) 읽기 시작했습니다만,

정작 인공지능에 대해서는 남들 한 이야기 정리해 둔 차원 정도의 이야기이고 (뭐 다른 이야기도 마찬가지죠), 사실 좀 실망했습니다. 다만, 중간 어딘가에서 인본주의 – 인간중심주의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계몽주의라 해야 할까 – 프레임의 정치적 구현인 전체주의와 민주주의(자유주의) 둘 다 이미 다가오는 세계에는 적용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 부분은 저도 그렇게 추측은 하지만, 달리 뭐라 말할 수는 없는 – 진짜로 뭔가 새로운 것이 나타나고 있다는 느낌적 느낌만 있는지라, 호기심이 일었는데, 무신론자의 신학개론에서는 그 이유라든지 어떤 형태로 전개될 것이라든지 하는 부분은 별로 말을 안하더군요. Effective Altruism이라든지 Dark Enlightenment에 대해서만 조금 더 자세히 설명했어도 용서하고 넘어가려 했었는데, 이 긴 책에서 별로 말하는 게 없는… 그래서 그 이전 책을 읽기 시작했죠. 혹시나 해서… 이 이야기는 다음에…


추가: 무신론자들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무신론자가 되지만, 기독교인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기독교인이 된다. 톨스토이의 유명한 말을 빌리자면, …

하라리가 무신론자임을 굳이 말하는 이유는 그걸로 그를 디스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무신론자를 존경합니다. 저 자신도 무신론자입니다. 생각해 보면, “내일도 해가 뜬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든지 “오늘도 나는 저녁을 먹을 것이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굳이 믿을 필요도 없는 영역의 문제이죠. 믿음의 가치는 믿기 어려운 곳에서 빛나는거죠. 노아의 방주가 어디서 발견되었다든지, 예수님의 역사적 실존을 어떻게 증명했다든지 하는 이야기는 제가 보기에는 잘 해 봐야 범주 오류입니다. 알 것은 알면 되는거고, 믿을 것은 믿으면 되는겁니다. 헷갈리지 말자구요.

이렇게 보면, 무신론 – 신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과 “고백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무신론자를 존경한다고 하는겁니다.

마치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말하듯 이야기가 자꾸 이쪽으로 저쪽으로 샛길로 빠지곤 하는데, 게다가 역사 전공이니 얼마나 빠질 수 있는 샛길을 많이 알고 있겠어요. 딱히 효심도 없는데, 따라가다가 숨 헐떡거리며, …

그나저나, 역사에 관심이 많다면, 서유럽 중심의 역사서술을 벗어나 중동과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의 역사서술을 따라가 보는 것도 아주 흥미롭습니다.

불만이라면, 그가 말하는 AI의 시대, 자유주의도 전체주의도 대안이 아니라는 이야기, 전세계적으로 보수가 똥볼을 차는 이유는 급변하는 –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변화에 가속도가 붙어서 도저히 균형을 잡을 수 없는 시대에 지킬 가치에 대한 현기증이 너무 심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에 공감했기 때문인데, 정작 여기에 대해서는 어떤 대안이나 설명도 없는 것이 불만인거죠. 그래서, 거꾸로 제2편 “호모 데우스”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앞에서 그 이야기를 했나 하고, … 그 이야기는 다음에…

읽는 책

도서

  1. Harari, Yuval Noah. 2024. Nexus: From Crisis to Connection in an Age of AI. Random House. https://www.penguinrandomhouse.com/books/754494/nexus-by-yuval-noah-har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