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교회
worldly church

호모데우스, 신이 되려는 인간

by Hyun Kim, on June 06, 2025

뭔가 옆에서 귀에 대고 끊임없이 잔소리하는 할아버지같아 그냥 도망가고 싶었지만, 그래도 중요한 이야기 하나는 하는 것 같아서 – 미래에는 어떤 정치제도가 자리잡을 것인가 – 혹시 이 분도 모를지 모른다는 의심은 들었지만, 그래도 3부작(이라 해야 하나)의 3부를 끝냈으니, 앞으로 가서 2부도 ~읽어~ 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Harari 2017).

별로,,, 기대에 못미칠 뿐 아니라, 아예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너무 많네요. 예를 들어, 이 분은 애니미즘에서 일신교로 옮아간 것이 아주 중요한 사건이며, 이것은 수렵채집 생활을 포기하고 농경으로 간 것 때문이며 이로써 애니미즘처럼 동물을 세상의 동등한 구성원이 아니라 (성경에 나오는 것처럼) 세상을 다스리는 대상으로 이해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만, … 아마도 이분이 지나치게 유대교적 관점에서 역사를 해석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근동과는 아주 다르지만 고유하게 농경을 발전시킨 중국에서는 유일신교가 자리잡지 않았죠. 또, 애니미즘에서 일신교로 넘어간 것은 유대인(과 어쩌면 아랍인 – 어쩌면이라 한 이유는 한참 나중에 생긴 일이라)만의 고유한 경험이지 보편적 경험은 다신교였죠. 그리고, 유대인과 아랍인은 이런 맥락에서 보면, 특이하게 농경과 거리가 있는 경험을 했었죠. 그러니, 일신교가 아니라 다신교가, 중국과 아시아 맥락에서 보면 그도 아니고 샤머니즘이 농경사회의 근간이었다고 봐야 할 이유가 많죠. 또, 이분이 수렵채집에서 농경사회로 넘어가면서 적어도 일반 농민들 차원에서는 남는 것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도 좀, … 그러니까, 굳이 수렵채집 안하고 농경을 함으로써 오히려 일반민중은 손해봤다는 주장도, 지금처럼 오히려 생태가 중요해지고, 환경이 중요해진 시점에서 보자면 그럴듯한 낭만주의적 과거에 대한 동경 같지만, 설득력이 많이 떨어지죠.

한 가지, 근대사회의 과학주의와 휴머니즘에 대한 이야기는 약간, 약간 귀를 기울일 가치가 있긴 하죠. 그는 말합니다. 신을 포기함으로써, 그러니까 의미를 포기함으로써 인간은 진보를 이룩할 수 있었고, 그리하여 스스로가 신이 되려는 욕망을 가지게 되었다.

… 상당히 서유럽중심주의이고, 상당히 토라식 사고죠. 앞에서 애니미즘에서 일신교로 넘어간 것이 농경사회의 원인/결과였다는 사고의 연장에서나 가능한, 그러니까 신 없이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려 하는 시대로 넘어갔다는 취지인데, 유대교적/유일신적 편견을 떠나서 주장하는 바가 뭔지 모르겠네요. 실망입니다.


솔직히 농경사회와 유일신론이 그때는 상관 없다었고 하더라도 – 그러니까 하라리가 주장하듯이 농경사회가 수렵채집인과는 다른 세계관을 채택했기 때문에 애니미즘을 버리고 토라의 유일신을 받아들였다는 전제가 역사적으로는 부정확하다 하더라도 – 결과론적으로 보면 나중에, 수세기가 지나 로마 황제시대에 오면 결국 유일신론으로서 기독교를 받아들였으니 결과론적으로는 그게 그거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이렇게 좁은 망원경으로 세계를 보니, 현대 세계를 아주 좁게 볼 수 밖에 없는겁니다. 뭐랄까… 농경사회와 유일신론을 밀접히 연결해 두었으니, 산업사회/현대사회를 탈유일신론의 잣대로 볼 수 밖에 없는 것이고, 그러다보니, 굳이 여기에 휴머니즘이라는 잣대를 붙이다보니, 휴머니즘의 다양성과 풍부함을 보지 못하는거죠. 그가 말하는 농경사회의 신화는 그저 토라와 십계명의 유일신일 뿐이고, 그러다보니 그의 휴머니즘은 그저 탈유일신론, 내가 신이 되겠다는 의지로밖에 보이지 않는거죠. 그러다보니, 그가 말하는 휴머니즘은 그저 공리주의인 겁니다.

읽는 책

도서

  1. ———. 2017. Homo Deus: A Brief History of Tomorrow. Harper. https://www.ynharari.com/book/homo-de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