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교회
worldly church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by Hyun Kim, on March 29, 2025

마치 한쪽 발을 지옥에 딛고 서 있는 것 같습니다. 계엄, 경제위기, 가짜뉴스, 기후재앙, 이제는 산불.

최악은 이 모든 문제의 핵심에–원하건 원하지 않건–기독교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입도 떼지 못할 것 같고, 고개 푹 숙이고 다녀야 할 것 같습니다. 가슴에 주홍글씨라도 새겨야 할 것 같습니다. 뭔가 사과하고 사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원죄가 이런 것 아닌가 싶습니다.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이사야 40:1)

이 말이 몇년 전부터, 신학교에 가기 전부터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때에 목사는, 목회자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상대방을 비난할까요? 내가 옳다고 강변할까요?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3–4년 전이었을까요. 습관적으로 운전하면서 오디오북 성경을 듣고 있는데, 저 구절이 흘러 나왔습니다.

Comfort, comfort my people, says your God. – Isaiah 40:1, KJV

머리가 쭈뼛 섰습니다. 그럴 리는 없지만, 마치 하나님이 내게 이야기하는 것 같았거든요. 그보다도, 내가 가장 듣고싶지 않던 말이었거든요. 일단은 내가 제일 못하는게 누구 위로하고 뭐 그런 것이구요. 그리고, 앞으로 뭔가 심각하게 위로해야 할 일이 생길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 같은 것이 있었거든요. 그러니, 더 심각하게 소름이 돋죠. 여전히 그게 하나님의 말씀이고, 내가 할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소름이 돋았다는거죠.

이사야서는 제1이사야와 제2이사야 (경우에 따라서는 제3이사야)로 나뉩니다. 보통 1–39장을 제1이사야(Proto-Isaiah), 40–55장을 제2이사야(Deutro-Isaiah), 56–66장을 제3이사야(Trito-Isaiah)라 합니다 (Oswalt 1998).

이사야 시대 중요 사건/맥락
제1이사야 1–39 739–700BC 북이스라엘 멸망(722BC)
제2이사야 40–55 545–535BC 남유다 멸망 (586BC)
제3이사야 56–66 520–500BC 귀환 (538BC)

시대적 배경이 다르므로, 이사야서는 서로 다른 2–3명의 저자가 썼다고 했지만, 차일드(Brevard Child)의 주장처럼, 제2, 3 이사야 저자는 신학적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역사적 맥락을 가능한 한 지우려 했으며, 제1이사야도 제2, 3 이사야의 가르침을 반영하여 상당히 편집하였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합니다 (Oswalt 1998). 저도 수긍이 가는게, 뒤쪽 특히 제2이사야라 불리는 40–55장의 내용이 없으면, 이사야서는 결국 심판에 대한 경고입니다. 회복의 약속은 없습니다. 그러면, 이사야가 아니죠. 우리가 아는 이사야가 아니죠. 최근에는 2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한다고도 합니다 위키피디어 이사야.

  • 1–33: 심판의 경고와 예루살렘, 유다와 열국의 회복의 약속
  • 34–66: 심판은 끝났고, 회복이 눈앞에

이렇게 본다면, 이사야서의 구조는 위 위키피디어에 따르면:

제1이사야 (1–39):

  • 1–12: 이사야 초기의 유다에 대한 예언
  • 13–23: 이사야 중기의 열방에 대한 예언
  • 24–27: “이사야 계시록,” 후에 추가된 내용
  • 28–33: 이사야 후기 예언
  • 34–35: 시온의 비전, 어쩌면 후에 추가된 내용
  • 36–39: 이사야의 삶에 대한 이야기, 일부는 열왕기에서 가져옴

제2이사야 (40–55), 전반부 (40–48)은 주로 이스라엘에 대해서, 후반부 (49–55)는 주로 시온과 예루살렘에 대해서

  • 만물을 주재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힘을 강조하는 도입과 결론,
  • 예루살렘의 구원을 선포하는 전령이 포함된 제2차 도입과 결론,
  • 여러 절을 나누는 찬송 조각들
  • 외국 열방의 역할, 바빌론의 멸망, 하나님이 선택한 사이프러스의 등극
  • 예언자의 메시지를 개인화한 네 개의 “종의 노래”
  • 하나님의 힘과 이스라엘에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등의 주제에 대한 몇몇 긴 시

제3이사야 (56–66)

  • 바빌론에서 귀환환 직후 무명의 예언자들이 한 예언 모음

그리고, 이렇게 본다면 역사적 접근법이 (아무리 정확하다 해도) 가진 문제가 보이죠. 제2이사야 등이 쓰여진 BC 545년 이전 사람들이 읽었던 이사야는 결론 없는 문제의 제기, 구원 없는 정죄, 그냥 꼰대의 지적질인거죠.

결론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이사야 40:1)

앞에서 이사야는 정죄하고, 비난하고, 이스라엘의 죄악상을 고발하지만, 결국은 망할거라 예언하고 저주하지만, 반전도 결론도 없는거죠. 클라이막스도 없고, 해방도 구원도 없는거죠. 이 모든 것은 위로로 시작합니다. 잘 해서가 아니라, 나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뜻하셨기 때문에…

한글 성경은 “너희는” 위로하라고 하지만, 영어 성경은 그냥 “위로하라(Comfort)”입니다. 누가 위로할 것인지는 모릅니다. 천사라는 말도 있고… 여하튼 이 말을 듣는 사람은 자는 위로해야 합니다. 잘했다는 것도 아니고, 운이 좋았다는 것도 아니고, 길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고,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내가 뜻하는 바이므로, 위로하라는 겁니다.

정치적인 입장을 취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비판하고 비난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할 말은 해야겠지만, 그게 결론은 아니라는거죠. 그게 구원입니다. 좀 더 읽어 보죠.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찌니라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 이사야 40:1–5

Comfort, comfort my people, says your God. Speak tenderly to Jerusalem, and proclaim to her that her hard service has been completed, that her sin has been paid for, that she has received from the Lord’s hand double for all her sins. A voice of one calling: “In the wilderness prepare the way for the Lord; make straight in the desert a highway for our God. Every valley shall be raised up, every mountain and hill made low; the rough ground shall become level, the rugged places a plain. And the glory of the Lord will be revealed, and all people will see it together. For the mouth of the Lord has spoken.” – Isaiah 40:1–5

우리는 구원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우리가 생각해낸 방법이 아니라,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읽는 책

주석

  1. Oswalt, John N. 1998. The Book of Isaiah Chapters 40-66. Wm. B. Eerdmans Publishing Co.